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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로 배웠다, 군이 뭘 잘못했는지”... [법정 417호]
  • 추현욱 사회2부기자
  • 등록 2025-07-19 13:47:53
  • 수정 2025-07-19 14: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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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명령 정당한지 따져 봐야지 않나…‘평시 군이 정치에 이용되는 일 많다’고 배워”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심리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두 번째로 출석한 정성우 전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준장)은 내내 답답해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그는 지난해 12·3 불법 계엄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받고, 경기 과천 선관위에 병력을 파견했다.

몇시간 동안 이어진 증인신문에서 정 준장은 당시 지시와 관련해 내부에서 우려와 반발이 있었고, 그때부터 “위헌·위법한 명령이라고 생각했다”며 억울함을 파력했다. 검찰과 윤석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의 주신문과 반대신문이 이어질 때마다 양쪽을 향해 몸을 거의 90도 가까이 돌려앉는가 하면, 미리 종이에 써 온 메모를 보고 일부 문장을 읊기도 했다.

정 준장의 증언에 따르면 여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직후 3단계 ‘서버 확보 지시’를 내렸다. 선관위 전산실 출입을 통제하고 서버를 넘긴다, 서버를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복사한다, 그것도 안 되면 서버를 떼어온다는 것이었다.

정 준장은 임무를 받은 뒤 부대원들과 모여 토의했다. 자연스럽게 우려가 터져 나왔다. 그는 “팀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냐’ ‘영장 없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느냐’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처벌되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들이 나왔다”고 했다.

이어 정 준장은 방첩사 요원들이 과천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방첩사 5층 법무실로 가서 이 명령이 적법한지를 따져봤다. 정 준장은 “선관위는 방첩사와 어떤 고리도 없다. 너무 이상했다”며 “지난해 5월 여 전 사령관이 ‘부정선거론’과 관련해 언급해서, 제가 그때 처음으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고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고 사령관에게 ‘정신 차리시라’고 했던 것이 떠올라 섬뜩했다. 다시 한번 법무 검토를 받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계엄 해제 이후에 군대에선 상명하복이 기본인데 왜 그때 법무실에 갔느냐, 특이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칭찬도 받았지만, 비난의 화살도 많이 받았다. 어떤 술 먹은 사람이 전화해서 비난하기도 하고 자괴감에 빠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팀원들이 위헌·위법하다는데 어떻게 (법무실에) 안 갈 수 있습니까. 명령이 정당한지 따져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2년 전에 제가 대학원 과정에서 헌법과 형사소송법 강의를 들었습니다. 12·12군사 쿠데타와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과제를 받았는데, 당시 군이 뭘 잘못해서 그렇게 됐는지, 군사 반란 폭동으로 어떻게 처벌됐는지 연구하고 페이퍼를 썼습니다. 교수님이 ‘평시 계엄 발생에 대해 각별히 주의하라. 평시엔 정치에 군이 이용당하는 사례가 많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때 그 공부가 ‘선관위 서버’ 명령을 필터링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 준장은 법무관들을 통해 ‘계엄 상황에서도 형사소송법 주요 규정은 유지된다’ ‘전자 정보 압수 규정 등이 지켜져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검토했고, 이에 따라 부대원들을 추후 철수시켰다.

또 정 준장은 여 전 사령관이 지시할 때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 지시라고 명확히 말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계속 선관위에 군 병력을 보낸 것에 대해선 ‘점검 차원’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선관위 서버 확보 지시가 대통령 선에서 내려왔다는 진술은 의미가 크다.

그는 “당시 군 의사결정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며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장관 주재 회의가 있었다. 상황 관련 지시가 상급 부대인 합동참모본부나 계엄사령부에서 왔어야 하는데, 여 전 사령관이 ‘대통령과 장관 지시’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들은 계속해서 정 준장의 진술을 흔들려고 애썼다. 윤갑근 변호사는 “선관위 서버 ‘탈취’라고 하면 그 말 자체가 불법적으로 느껴지는데, 정말 이렇게 지시한 게 맞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정 준장은 “제가 들은 정확한 말은 그게 아니었다. 국정조사 때였는지 모 의원의 ‘서버 탈취’라는 말을 하면서 이후로 모든 언론에서 고유명사처럼 쓰고, 그게 방첩사의 임무였던 것처럼 알려졌다”고 했다.

이에 윤 변호사가 “그러면 오염된 용어가 아니냐”라고 재차 묻자, 정 준장은 “오염됐다기보다, 서버를 떼어오라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탈취’라는 단어만 없었을 뿐, 위헌·위법한 지시였다는 점은 그때도 명확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일 재구속된 윤 전 대통령은 10일에 이어 이날 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윤갑근 변호사는 이날 증인신문에 앞서 “현재 피고인이 갑자기 구속돼 매우 힘든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며 “평소 당뇨, 혈압약을 복용하는데 기력이 많이 약해졌다. 어지럼증으로 구치소 내 접견실까지 가는 데 계단을 올라가는 것조차 매우 힘들어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재판에 출석해 종일 장시간 앉아있기 어렵다”며 “이런 상황과 함께 위법하게 사건을 받아 공소를 유지하고 있는 특검이 공판에서 배제되지 않는 이상 피고인은 출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에 검찰은 “재판부에서 구인영장을 발부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구속영장 발부가 부당하다며 구속적부심사 심문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 사건 청구는 이유가 없다고 인정된다“며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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