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곳곳에 내걸린 불법 현수막, 그중 누가 걸었는지 확인하려면 정보공개를 신청하셔야 합니다.“
충북 제천시청 건축과 김진희 담당자의 이 말은, 언뜻 듣기에 법적 절차를 지키는 공무원의 원칙적인 태도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단지 현수막 위치를 확인하는 것조차 정식 정보공개 청구를 요구하는 이 행정은 과연 효율적인가 되묻게 된다.
◆신고는 15건, 실제 설치는 수십 건?
최근 제천 시내 전봇대 곳곳에 설치된 배너형 광고물이 눈에 띈다. 신고된 불법 현수막 건수는 총 15건이라고 하지만, 현장을 둘러본 결과 실제 설치된 개수는 이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이에 대해 본 기자가 건축과에 문의해 “도대체 어디에 신고가 들어왔는지 위치나 도면을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돌아온 대답은 “정보공개를 신청하라”는 것이다.
단순히 현수막 설치 위치를 확인하려는 요청에조차 공식 정보공개 청구 절차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가? 실제로 이 같은 방식은 정보를 감추는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크다.
◆행정력 낭비인가, 관행인가
‘불법 광고물 정비’는 지자체의 고유 사무이자, 시민의 시정 만족도를 좌우하는 민감한 문제다. 그러나 정작 담당 부서는 시민이든 기자든 현장 정보에 접근하려는 시도에 대해 법적 장벽을 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보공개 절차에 드는 시간과 인력은 물론,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불법 광고물 관리 업무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 특히 공공시설물(전봇대 등)을 활용한 설치 행위는 도시 미관, 보행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빠른 확인과 조치가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단순한 현수막 위치조차 ‘민감 정보’처럼 취급하는 것은, 불필요한 행정 장벽이자 책무 회피의 목적으로 비칠 수 있다.
◆‘열린 행정’을 가로막는 구태
최근 중앙정부는 ‘적극 행정’을 기조로 민원 처리 개선, 정보공개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여전히 '알려주지 않기 위한 절차'를 만들어 시민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현수막 하나를 관리하며, 정작 시민의 알 권리는 외면하는 현 행정 시스템. 제천시가 내세운 '열린 시정'은 어디에 있는가.
◆정보공개 청구부터 하세요”
지자체의 이 답변은 단지 하나의 사례가 아니라, 공무 행정이 얼마나 형식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불법 현수막을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공공정보의 신속한 공유가 선행돼야 한다. 오히려 시민이나 언론이 사전 감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자체 본연의 역할이다.
이제 제천시는 묻고 대답하는 행정을 넘어서, 스스로 공개하고 협력하는 행정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