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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쌍용차 사태 후 16년 만에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 추현욱 사회2부기자
  • 등록 2025-08-25 08:36:49
  • 수정 2025-08-25 09: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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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노란봉투법 큰 두 축, ‘하청 노동자의 원청 교섭권’ 보장과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9년 노란봉투법의 발단이 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로부터 16년만이다. 당시 회사는 정리해고 반대 파업에 47억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 후 자살하거나 병사한 쌍용차 노동자는 2019년까지 30명에 달했다.

노란봉투법의 큰 두 축은 ‘하청 노동자의 원청 교섭권’을 보장하고,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구체적으로 보장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을 통해서인데 노조법 96개의 조항 중 단 2개, 용어를 정의하는 제2조와 손해배상 청구에 관한 제3조를 고치는 것이다.

제2조에서는 사용자에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시키고, 쟁의행위 대상을 ‘근로조건 결정에 관한 사항’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으로 확대한다. 쉽게 말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김충현씨와 같은 하청 노동자들도 안전 같은 중요한 결정을 두고는 원청과 교섭할 권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또 현행 제3조는 사용자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는 노조와 노동자에게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했는데 노란봉투법은 그 범위를 ‘그 밖의 노조 활동’으로 확대한다. 노조에 손배 청구를 하지 않으면 ‘배임(임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기업 측 주장에 사용자가 노동자를 ‘면책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도 추가했다.

노란봉투법이 도입되면 폭력·파괴 같은 불법파업이 늘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지만 폭력·파괴·사업장 점거를 통한 파업은 노조법상 금지돼있고, 노란봉투법의 개정 대상도 아니다. 

노조법 제4조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이나 파괴행위는 정당한 행위로 해석돼선 안 된다’고 하고, 제42조는 ‘쟁의행위는 폭력이나 파괴행위 또는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 등을 점거하는 형태로 행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노란봉투법의 탄생은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 역사 속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1990년 당시 노동부 장관이었던 최병렬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는 “노동운동의 준법질서 확립 대책”으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를 적극 활용하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법원은 1990년 노동자의 쟁의행위에 손해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한 후 다수 파업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불법’ 딱지를 붙이기 일쑤였다.

그러다보니 기업들 사이에서는 파업 노동자가 평생 벌 수 없는 막대한 액수를 손해로 청구한 뒤 법원 판단을 기다리거나 노조가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편리한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2009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와 기업 등이 노조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151건, 청구액은 2752억7000만원에 달한다.

노란봉투법도 2014년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47억원 손배 폭탄을 막자는 ‘노란봉투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무급휴직자였던 임무창씨 부부가 차례로 목숨을 끊으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노란봉투법은 19대 국회부터 발의됐지만 통과는 매번 불발됐다.

잠자던 노란봉투법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인 2022년 7월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하청노동자 파업을 계기로 다시 부상했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을 주도한 하청노조 소속 노동자 5명에게 470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노조와 개인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국회에서도 2023년과 2024년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두 번 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가로막혔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면서 노란봉투법은 재추진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기업인 간담회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해 “선진국 수준으로 맞춰가야 할 부분도 있다”며 재계의 협조를 구했다.

국민의힘은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 상정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인 의사진행 방해)로 맞섰다.  재계에서도 비슷한 취지로 반대하고 있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주한유럽상공회의소 등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까지 반발했다.

우선 노란봉투법이 하청 노동자에게도 교섭권을 부여하는 점은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하청 노동자들의 원청에 대한 교섭권 등이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협약(87·98호)에 맞는다고 일관되게 해석해왔다. ILO는 UN 산하 전문기구로, 여기서 제정하는 핵심협약은 국제 사회에서 국제노동기준으로 간주된다.

2023년 10월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발표한 시행령에 따르면 ‘임금, 업무 할당, 안전’ 등의 근무 조건 중 하나 이상을 공동 결정할 경우 공동사용자로 본다. 로렌 맥페란 당시 NLRB 위원장은 “근로자의 중요한 고용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교섭 의무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엔 ‘아마존이 하청업체 배송기사의 공동 사용자’라는 NLRB의 잠정적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파업권 보장 역시 세계적 추세는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는 쪽이다. 영국은 파업 노동자 개인에 대한 손배 청구를 금지하고  노조에 대한 손배 상한액도 약 4억원으로 제한한다. 영국 보수당은 2023년 파업 대체근로 지시 등을 보장하는 ‘최소 서비스 수준법’(MSL)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새로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출범 직후 해당 법안을 폐기했다. 파업 노동자 불이익 금지 등을 규정한 노동권리법도 추진 중이다. 영국 정부는 이 법 도입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혜택이 연간 수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프랑스는 하청 노동자가 원청기업을 상대로 한 파업을 합법으로 규정하고, 독일의 경우 손해배상 소송은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하고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지는 않다. 

2022년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에선) 실질적으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실제 사용자가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를 상대로 손해 배상청구를 해 그 이행을 요구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현대차 등 기업들은 노란봉투법이 통과되기 직전 손배 소송을 선제적으로 취하했다. 최근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 손배 소송을 취하하고 건전한 노사관계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다. 

이제 노란봉투법이 건강한 노사관계 확립과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와 노사 모두가 노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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