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 4시에 일어나 3시간 넘게 달려 강릉까지 왔습니다. 가뭄으로 고통받는 시민을 위해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 급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일 오전 강원도 강릉시 홍제정수장에서 만난 고승재(32) 소방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 천안에서 근무 중인 고 소방장은 국가소방동원령 발령으로 이날 강릉을 찾았다. 고 소방장뿐 아니라 전국에서 몰려든 소방차 71대는 종일 인근 지역 소화전에서 담아온 물을 홍제정수장에 쏟아붓는 일을 반복했다. 홍제정수장은 강릉시의 주요 식수원인 오봉저수지(저수량 1432만t)의 물을 정수하는 시설이다. 소방차의 목표 급수량은 하루 3000t이다.
같은 시각 강릉시 사천면 사천천과 연곡면 연곡천에는 공군 소속 소방차 4대와 살수차 등 31대가 등장했다. ‘오봉저수지 원수 추가 투입 작전’이다. 소방차가 다른 취수원에서 정수된 물을 홍제정수장까지 옮겨 바로 시민에게 공급하는 방식이라면, 원수 추가 투입은 말 그대로 상대적으로 수량이 풍부한 다른 지역 하천이나 저수지의 물을 저수율이 부족한 오봉저수지까지 차량을 이용해 옮기는 개념이다. 강릉시는 앞으로 살수차를 400대까지 늘려 하루 최대 1만5660t을 추가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남대천 용수지원 1만t, 민방위 급수시설 4640t 등 하루 최대 3만8430t의 용수를 공급한다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강릉에서 하루 소비되는 물의 양은 하루 9만t에 이른다.
강릉시의 주요 식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4.5%까지 떨어지면서 강릉에선 ‘수돗물 공급 중단’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가뭄과의 전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강릉시는 이날 저수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시간제나 격일제 급수 공급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이 모씨 집에선 싱크대 수도꼭지를 끝까지 돌렸지만 수돗물이 ‘졸졸졸’ 약하게 흘러나왔다. 욕실로 자리를 옮겨 샤워기를 틀어봤지만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저수율 15% 선마저 무너지면서 강릉에서는 수도 계량기 75%를 잠그는 제한 급수가 본격적으로 시행됐기 때문이다. 사람 먹을 물도 부족해지자 강릉시는 지난달 30일부터는 오봉저수지의 농업용수 공급 자체를 중단한 상태다.
이씨는 “아직은 수돗물이 나오지만 수압이 너무 약해 샤워 등 일상생활이 힘들다. 세수하거나 머리 감은 물을 대야에 따로 받아서 사용하고 있다. 건조기 물통에서 나온 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강릉 지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는 ‘땀 흘리면 샤워해야 해서 운동을 중단했다’, ‘물티슈로 세차한다’는 등의 물 절약 경험담이 공유되고 있다.
태풍과 산불, 폭설 등 각종 대형재해에 이어 최악의 가뭄까지 발생하자 시민들은 ‘재난 트라우마’에 떨고 있다. 강릉은 2000년 5월 발생한 동해안 대형산불로 사천과 교동 등 1447㏊가 잿더미가 됐다. 2004년 3월 옥계산불(430㏊), 2017년 3월 강릉산불(160㏊), 2017년 5월 강릉산불(252㏊), 2023년 4월 경포산불(121㏊) 등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2014년 2월에는 총 11일 동안 누적 적설량 179.4㎝의 폭설이 내려 사실상 도심 기능이 마비되기도 했다. 2002년 8월에는 태풍 ‘루사’가 강릉을 강타해 사망 46명 등 68명의 인명 피해와 973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주민 김 모씨는 “산불과 폭설, 태풍에 이어 가뭄까지 재난이란 재난은 다 겪어 본 것 같다. 이제 재난이라면 몸서리가 난다.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돗물이 끊어지면 생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단수만은 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