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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은 좀 나쁘다, 싸우는 거라는 생각,
  • 이회두
  • 등록 2015-03-05 01:31:00
  • 수정 2017-04-21 17:2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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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론은 목소리 크거나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말싸움이 아니다.

토론은 싸움이라는 생각

 

 토론은 목소리 크거나 말 잘하는 사람이 이기는 말싸움이 아니다 - [교육정책 연재칼럼]

뉴스21통신

서울총본부장이회두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100분토론, 끝장토론, 정책토론 등의 편향적인 형식 외에 우리 사회에서는 제대로 된 토론문화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토론 교육을 받아 본 세대도 없다. 그나마 요즘은 TV방송에서 ‘대학생토론대회’나 ‘비정상회담’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들이 토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여겨진다.

민간교육기관과 지자체, 교사들을 중심으로 토론에 대한 꾸준한 노력도 많은 성과를 보이고 머지않아 토론 열풍의 조짐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아직은 토론에 대한 인식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저런 강의에 오신 참석자들에게 ‘토론’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단어가 연상이 되는가를 물으면,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발표한다, 설득한다, 고급스럽다’는 류의 답변도 있지만 ‘끝장을 본다, 우긴다, 몇 사람만 떠든다, 몰아 세운다, 성질낸다’는 식으로 부정성향의 답변이 많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토론은 싸우는 것이라는 선입견들을 갖고 계신다고 여겨질 지경이다.
하지만 토론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하려는 ‘싸움’과는 달리, 규칙이 있고 예절이 있는 ‘차원 높은 경기’라고 할 수 있다.

 

해외에 있는 한국 유치원 자모회는 열성적이다.

 

필자가 토론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이가 상해엔젤유치원에 다니던 시기니까 2001년 경으로 기억한다. 중국의 교육정책상 외국 교육기관의 개수나 커리큘럼 등에 상당한 제약을 두던 시절이라 당시 영사관과 연합교회 등이 어렵게 허가를 받았다. 교민들도 적극 환영하며 한국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조건에서도 입학원생이 가득했다.


객관적인 환경이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유치원측과 자모회의 열의는 대단했고, 필자는 강력히 애원(?)해서 유치원 자모회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나중에는 아빠들의 참여가 계속 늘어나면서 자모회라는 명칭도 학부모회로 바꾸게 된다.

 

‘중국어를 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여름방학이 끝나자 자모회장이 두 아이를 모두 중국 유치원으로 옮기겠다며 자리를 내 놓겠다니 대책을 마련하자는 회의가 열린다. 우리는 3월이 새학기지만 중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9월이 새 학기인데, 자모회장은 두 아이를 중국의 좋은 유치원에 보내려고 방학 내내 준비를 시켰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중국어를 잘하게 밀어주고 싶다는 이유로 말이다.
‘중국어를 잘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자모회장은 중국어 실력을 높이려면 모든 영역을 다 잘해야 하는데 발음까지 생각한다면 어릴수록 유리하다는 주장을 한다.


큰 욕심은 없지만 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중국어를 배워야 해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모국어를 읽는 속도로 읽으며 이해를 하고, 자신의 생각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으며 상대방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그 의도까지 이해하면서 유창한 발음과 억양, 그리고 뉘앙스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는 물론 은유나 비유도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는 ‘한국어를 잘하는가’ 자신의 생각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으며 상대방이 말하는 것에 대해 그 의도까지 이해하면서… 그렇다면 이런 수준은 욕심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조기 언어교육에 대한 토론은 효과가 있었을까,

 

자모회장의 주장은 한국유치원의 설립 자체에 문제를 제기한 꼴이 되어서 회의 분위기가 바뀐다. 누군가가 제안을 한다. “우리 말 나온 김에 조기 언어교육에 대해 ‘토론’ 한 번 해봅시다.” 몇 사람이 동의하고 자리를 잡고 토론을 시작한다.
‘어려서 배워야 발음이', ‘중국어를 잘한다는 얘기가 중국 말을 잘한다는 것과는 다르다’, ‘시장에서 소리 지르고 말 잘한다고 국어를 잘하는 건 아니다’, ‘의사 소통을 잘 하는 것은 언어 실력이라기보다 일종의 기술이다’ 등 가볍게 시작했다가 차츰 진지해진다.


‘영어도 어릴 때부터 배운 애가 잘하듯이 중국어도 마찬가지다’, ‘한국말의 어휘력이 풍부한 사람이 중국어 표현이 풍부해지므로 중국어를 잘 하려면 모국어 기반지식이 풍부해야 된다’,
상대방이 자기의 의견과 다른 생각을 얘기하면 마치 인격적인 모욕을 당한 것만큼 정색을 하다가 급기야는 말꼬투리를 잡아가며 인신공격의 상황으로 진행이 된다. 느닷없이 언성이 높아져서 말리던 사람까지 엉켜서 저러다 싸움나지 싶다. 우리나라 국회 모습이 겹쳐보인다.
규칙이 없는 토론은 한 마디로
망했다!

 

‘흑백진군’ 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이 때, 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모 항공사 상해 지사장을 맡고 있던 아빠회원이 "‘흑백진군’ 이라고 들어 보셨는지요, 우리 '흑백진군'하자수요"라며 긴급 안건을 내놓았다.

흑백진군이라니? 대부분 의아해하고 있자 자신이 사회를 본다고 하며 앉은 자리 그대로 두 팀으로 나누고 팀장을 뽑으라고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해외에서의 자모회는 열성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 편이라서 누가 나서면 말을 잘 듣는다. 우리는 팀장을 정하고 팀명도 만들었는데 편의상 흑팀, 백팀으로 부른다.

 

진행된 상황을 요약해 본다.
안건은 ‘자녀에게, 외국어 조기교육을 시켜야한다’
양 팀 대표를 나오게 한 뒤, 사회자가 동전을 몇 개 쥐고 각 팀장은 동전 개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말한다. 흑팀장이 맞췄다. 그러자 사회자가 안건에 대해 찬성을 할 것인지 반대를 할 것인지를 정하라고 한다.
각자의 생각이 아닌 팀의 방향을 따라야한다니 순간 팀원들은 혼란에 빠져 버렸다. 흑팀이 논의 후 찬성을 정하자 백팀에게는 발언을 먼저 할지 뒤에 할지를 정하라고 한다. 이게 뭐지? 아무튼 흑팀에서 한 명이 찬성하는 의견으로 먼저 발언하고나면 백팀이 이어서 반대하는 주장을 편다. 사회자가 상대의 발언을 메모하란다. 모든 참석자에게 골고루 한 번씩 발언 기회가 간다.


찬성과 반대를 내 의견이 아닌 내가 속한 팀의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점도 허를 찔린 기분이었고, 필자를 더욱 놀라게 한 점은 번갈아 발표를 하되 시간(당시에는 3분)이 정해져 있어서 말을 하든 안하든 오롯이 발표자의 시간으로 주어진 시간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말을 하고자해도 3분 안에 마쳐야하고 심지어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조용히 서 있어야 한다. 


돌아가며 발표를 마치자 교차 질의를 하라고 한다. 상대를 지정해서 발표 내용의 허점을 공략할 수 있단다. 이 역시 제한 시간(2분)은 있다. 마지막으로 팀장의 마무리 발언 기회가 주어지고 흑백진군은 끝이났다. 사회자의 권한으로 두 팀의 진군점수가 동점 판결이 났는데 동점일 경우에는 반대를 선택한 팀이 승리하는 것이란다.


모두가 신선한 경험을 했다. 토론은 싸움이 아니다. 토론은 나의 의견을 분명히 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립되는 의견을 경청하되 허점을 찾아내어 공략을 하여 우리 팀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진지한 활동이다. 토론을 통해 승패를 가르고 경쟁을 하는 이유는 자칫 다수결제도나 목청 큰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힘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이다.
(며칠 후 자모회장은 자모회장은 모국어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중국 유치원 입학준비에 애쓴 것도 살리고 싶다는 말과 함께 두 아이 중 큰 아이만 중국유치원으로 보냈다.)

 

토론, 특히 대립식 토론은 최고의 커리큘럼이다.

 

얼떨결이지만 ‘흑백진군(후일에 이 방식이 중국 명문학교의 중점교육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라는 대립식 토론을 겪은 후 필자는 토론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자료를 수집하여 매월 2~3회씩 주말에 토론 강의를 해오고 있다. 상해에서는 다국적 아이들을 모아서 진행하였고 귀국한 후에는 지인의 학원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사회를 본다.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이들은 평균 3주 정도면 찬반이 있는 대립식 토론에 열광한다. 자신에게 반드시 발언의 기회가 오고, 주어진 시간은 그야말로 자기의 시간이라는 점에 두려움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안건에 대한 찬성과 반대가 정해지는 것이 자신의 뜻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자극이 되어,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갖는 상대방을 오히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고백하곤 한다.


“저는 저희 팀에 정해진 의견과 달라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어요.” 라던 아이가
“입장을 바꿔서 얘기해보니까 알게 된 것들이 많아요, 너무 좋아요”라는 탄성을 지른다.

 

지난 교육감 선거 결과가 말해 주듯 우리나라 교육이 위기에 처해 있고 참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인식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교육 정책의 일관성이나 감독기관의 독립성, 교사들의 자율권과 학교 재정의 안정 등 커다란 줄기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


그러한 장기적인 개혁에 앞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커다란 파장을 만들 수 있는 즉각적인 방법이 있다면 정규 교과과정에 대립식 토론을 도입하는 일이다. 대립식 토론의 정규 교과과정 도입은 문이과 통합이나 스토리텔링, 전자 교과서나 사물인터넷 등의 새로운 스마트 교육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다음 회에는 '대립식 토론의 형식과 성공 방정식'이 연재됩니다 - 편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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