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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표 스포츠혁신위원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 잊지 말아야”
  • 조정희
  • 등록 2019-04-18 10: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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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유럽스포츠, 이기는 목적은 같지만 복종 아닌 ‘공감’ 얻어내는 훈련방식”


▲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은 없음)


최근 연이은 체육계 폭력과 성폭력 증언이 연달아 터지면서 스포츠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러한 체육계 문제는 한 선수의 일상을 전인격적으로 지배할 만큼 특수한 구조 속에 지속돼 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스포츠계 폭력 및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지난 2월 ‘스포츠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스포츠 분야에서 발생하는 폭력과 성폭력 문제를 근절시키기 위해 체육 분야 구조 혁신을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체육계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위원회는 민간위원 중심으로 자율적 운영하며, 정부는 위원회의 행정 등 지원업무에만 참여한다. 위원회는 민간위원 15명, 당연직 위원 5명(차관급) 등 총 20명으로 구성됐다. 출범하고 첫 회의가 열렸던 2월 11일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바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영웅이자 KBS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영표 해설위원이다. 정책브리핑은 지난 12일 이영표 민간위원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만나 그가 생각하는 ‘스포츠 혁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영표 위원은 스포츠 인권, 학교 스포츠 정상화, 스포츠 선진화·문화 등 총 3개 분과 중 ‘스포츠 선진화·문화분과’에서 활동한다. 사실 그는 처음 정부로부터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꺼렸었다. 이 위원은 “과거에도 스포츠혁신위원회와 같은 성격을 지닌 TF팀이 만들어지고 참석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형식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서 요청이 들어왔을 때 별로 내키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스포츠혁신위원회는 달랐다. 이 위원은 “보통 위원회를 구성하면 국장급 인사 1명이 총괄했는데, 이번에는 차관급 인사가 5명이나 참여했다”면서 “무엇보다 한국 스포츠 전체의 시스템과 구조를 바꾸기를 원하고 이와 관련해 의견을 내달라는 모습을 보고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받고 기대하며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스포츠혁신위원회, 구조적으로 바꿔 문제 바로잡는다

그동안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스포츠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당하고 올바르지 못한 문제점들도 많았다. 이 위원은 “이제는 과거에 모른 체했던 문제점을 몇 번의 좋은 성적이나 결과로 덮고 갈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구조적으로 처음부터 바꿔서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 주는 의미, 스포츠를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재정립하겠다는 취지에서 혁신위가 출범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오는 6월까지 체육 분야 구조 혁신을 위한 세부 과제를 도출하고, 2020년 1월까지 부처별 세부과제 이행 현황을 점검한다.

우선 위원회는 스포츠 인권 문제, 엘리트 스포츠, 학교체육 등 전반적인 의견을 공유하고 3개 분과로 나눠서 각 분과에 맞게 전문화·특성화해 논의하고 의견을 개진한다. 이 위원은 “의견을 개진하는 과정에 다양한 의견이 오갈 수밖에 없고 열띤 토론을 한다. 한국 스포츠계의 문제와 잘하고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비교 분석해 한국 환경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 무엇인지 찾고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폭력 및 성폭력 왜 발생하나

이영표 위원은 “(성)폭력 문제는 비단 스포츠 분야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스포츠에서 발생하는가?’를 질문하기 전에 왜 우리 사회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질문의 대전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데서도 발생하니깐 스포츠에서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다.


단, 스포츠에서 발생하는 폭력 및 성폭력의 문제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와는 약간 특수한 부분이 있다. 스포츠에서 지도자가 선수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이영표 위원은 “기술을 가르치는 부분에서, 특히 단체운동의 경우 감독이 전술을 짜면 선수들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따라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즉 선수가 감독의 명령에 자기 생각과 무관하게 따르는 것에 습관화됐다면 지도자의 말이나 행동은 선수에게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체육계에서는 지도자가 부당한 방법으로 폭력을 가하게 되면 선수들은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되고, 심지어 이러한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서보다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유럽스포츠, 이기는 것은 똑같지만 훈련 방법이 다르다

스포츠계의 교육시스템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차이점에서 시작한다. 동양에서는 선생님은 스승님이기 때문에 무조건 예절을 지키고 순종하는 경향이 있지만, 서양의 경우 제자와 스승의 관계는 수평적이고 역할이 다르다. 이 위원은 “제자가 스승으로부터 배우는 것은 비슷하지만, 역할의 관계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물론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는 둘 다 장단점이 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수직적으로 관계가 이뤄졌을 때는 일방적으로 명령하거나 다그치는 쪽으로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 이 위원은 “한국에서 운동했을 때는 감독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했다. 그것이 심지어 부당해도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운동했을 때에는 지도자를 존중하는 것은 똑같지만, 지도자의 의견에 나의 의견을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었고, 지도자도 그 의견을 받아들이고 포용하거나 다시 논의할 수 있었다. 즉 의견 교환이 충분했다. 하지만 한국 문화에서는 그러한 면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또한 서양문화에서는 ‘이 훈련을 왜 해야 하는지’, ‘효과는 무엇인지’ 묻기 때문에 지시하면 따라야 하는 한국의 훈련 방식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이 위원은 “원리를 알고 해서 동기부여가 돼 효과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포츠,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어

유럽이든 미국, 한국이든 스포츠에서는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두는 것이 똑같다. 피파의 페어플레이 제1정신도 ‘나는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이다. 스포츠의 생명력은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에 있다. 만약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미가 없고 흥미를 잃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스포츠의 제1정신이지만, 이기기만 하면 될까?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이기는 것만 목적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이 위원은 “한국에서는 이기는 것에 최선을 다하지만,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녹아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겨야지만 능력을 인정받고, 이겨야지만 가치를 찾는 전체적인 사회적 구조와 인식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왜냐하면 승자보다 더 감동 있는 패자, 2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시선을 두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는 스포츠혁신위원회에서 구조적 변화를 통해 지금까지 승리지상주의에 매몰돼 보지 못했던 것을 다시금 보게 만드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유럽 스포츠에서는 체벌하지 않는가?

유럽에서 선수와 지도자 간에 체벌은 어떤 이유로도 없다. 이영표 위원도 개인적으로는 10살 이하의 어린아이가 잘못했을 때 종아리 정도의 처벌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10살이 넘었을 때의 체벌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 위원은 “유럽에서 체벌은 폭력 그 자체지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설사 성적이 잘 안 나오거나 선수가 지도자의 말을 안 들을 때에도 대화로 푼다. 지도자는 왜 우리가 열심히 해야 하는지, 이겨야 하는지, 이겼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지면 얼마나 슬픈지에 대해 설명하고 목표를 분명하게 얘기한다. 이 위원은 “선수들로 하여금 폭력적인 것으로 복종시키는 것이 아니라, 공감을 얻어내는 지도방법을 한다”고 말했다. 경기에서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같지만, 가르치는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아마추어 선수 시절, 이기는 것과 동시에 균형 잡힌 성장 이뤄져야

스포츠에서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영표 위원은 아마추어 선수 시절에는 이기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에 목적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는 “학생선수의 경우 스포츠를 통해 인격이 형성되고 인내심을 기르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기르는 동시에 균형 잡힌 성장이 이뤄져야 한다. 나아가 이기는 것에만 집중 조명하는 사회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훈련할 때 지도자들이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와 언어, 마인드가 가장 중요하다. 그는 “지도자가 선수를 사랑으로, 합리적으로 대하면 선수들도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선수들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좋은 지도자, 최고 성적을 내는 지도자가 아니라 성장시키는 지도자

그렇다면 지도자들은 왜 선수들을 승리로만 몰고 가는 걸까. 그는 “환경과 조직이 지도자가 최고 성적을 냈을 때만 좋은 평가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사회 환경도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 특히 학교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가 아니라, 선수들을 기술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성장시키는 지도자가 좋은 지도자라는 인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아울러 그는 “대학입시에서도 공부하는 아이들도 스포츠를 하고, 스포츠를 하는 아이들도 공부하는 입시문화에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땀을 흘리면서 승리했을 때 겸손할 수 있는 태도, 졌을 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는 스포츠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이 위원은 “공부만 잘한다고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함께 성품과 마음을 함께 수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이 동시에 이뤄졌을 때 이러한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이 운동을 잘하기 전에 올바른 사람이 되길 바란다. 운동선수는 운동을 잘하는 것보다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지도자는 지도를 잘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더 중요하다.

운동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

이 위원은 운동선수가 운동을 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누구보다 잘 안다. 운동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큰 목적이고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운동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는 유럽에서 운동할 때 특별한 경험을 했다. 이 위원은 “1주일에 한 번 경기가 있는데, 1주일에 한 번 경기장에서 축구 팬들에게 환영받는 선수가 있는 반면에, 어떤 선수는 클럽 하우스 안에서 직원들에게 매일같이 환영받는 선수가 있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매일 삶에서 환영받는 선수가 행복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교육이라고 하면 공부만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지혜와 지식은 다르다. 이 위원은 “물론 어린 학생들이 지식을 쌓는 것은 중요하지만, 지식을 쌓는 것보다 지혜를 쌓는 것이 훨씬 중요한 가치가 있다. 교육을 지식으로 한정 짓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길 바란다. 이 위원은 “마치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면 좋은 선생님, 좋은 학생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만드는 이러한 사회의 인식이 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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