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21 통신=추현욱 ]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필두로 한 ‘동맹파’와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등이 속한 ‘자주파’가 외교·안보 현안을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에 불을 붙인 건 ‘자주파’로 분류되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다. 정 전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 자문위원으로 참석해 “대통령이 앞으로 나갈 수 없도록 붙드는 세력이 있다. 이른바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사실상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저격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싫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통령 주변에 있다”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 주변에 소위 ‘자주파’가 있어 앞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자주파-동맹파 갈등은 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유엔(UN)총회에서 밝힌 ‘엔드(E.N.D) 구상’에 대한 해석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 대통령은 대북 문제와 관련해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뼈대로 하는 ‘엔드(E.N.D) 구상’을 내놨다. 위 실장은 이 세 요소가 우선순위나 선후 관계가 있는 게 아니라 “서로 추동하는 구조”라고 한 반면, 정동영 장관은 엔드 구상은 우선순위가 있고 교류·협력이 선행 과제라고 지적했다.
‘자주파 대 동맹파’ 구도는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인사가 짜여질 때부터 사실상 예견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의 외교·안보 라인 이 자주파-동맹파 갈등이 불거진 20년 전과 등장인물이 비슷하다는 이유다. 게다가 위 실장은 20년 전 자주파-동맹파 갈등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자주파-동맹파 갈등은 정책적 입장 차이에 그치지 않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두고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정동영 장관은 지난달 24일 외교·안보 분야 당정회의에서 장관급으로 구성된 엔에스시에 외교부, 국방부 출신인 국가안보실 1, 2, 3차장이 참석하는 것을 문제로 삼으며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언급했다. 엔에스시 구성상 자주파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소수일 수 있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정 장관은 또 위 실장이 맡은 엔에스시 상임위원장도 통일부 장관이 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통일부 장관 겸 엔에스시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전례를 참고해, 본인이 위원장을 맡아 남북관계 개선 등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에 난감해하는 기류도 적지 않다. 여당 내에서 위 실장은 합리적 인사로 특히 미국 정계의 강경파가 제기하는 한국의 반미 정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위 실장과 조현 외교부 장관을 외교안보 라인의 주요 투톱으로 내세운 것도 이런 이유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미국을 상대로 한 관세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데, 자주파 대 동맹파 갈등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게 없다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냐”며 “대통령실에서 메시지 조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