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 출신 승리가 지난해 캄보디아 한 클럽 무대에서 발언하는 영상. 무대 배경에 등장하는 로고(붉은색 원)는 범죄 소굴 ‘태자단지’ 운영 주체 중 하나인 프린스홀딩스 로고와 같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캄보디아의 대형 민간기업 프린스그룹(프린스홀딩스)이 온라인 사기(스캠) 단지 운영 의혹이 불거진 뒤 본사 간판을 철거하고 계열사 명칭을 변경하는 등 이른바 ‘흔적 지우기’에 나선 정황이 포착됐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해당 그룹을 초국적 범죄조직으로 규정하고 제재에 돌입하면서, 그룹 해체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프놈펜의 중국인 밀집 지역 코피치에 위치한 프린스그룹 본사는 불이 꺼진 채 한산한 모습이었다. 건물 외벽에 걸린 황금색 ‘PRINCE’ 로고는 사라지고 철제 골조만 남아 있었으며, 내부 직원들도 “여기가 프린스그룹이 맞느냐”는 질문에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사진 촬영을 제지하는 경비원의 태도도 예민했다.
시내의 주상복합시설 ‘프린스플라자’ 역시 간판이 철거된 상태였다. 프린스그룹이 운영하던 클럽 겸 펍 ‘프린스브루잉’은 문을 닫았고, 현지 경비원은 “새 사장이 인수 중”이라며 출입을 막았다. 프린스그룹의 흔적은 곳곳에서 지워지고 있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캄보디아 남부 시아누크빌의 대형 쇼핑몰 ‘프린스몰’은 최근 ‘유(U)몰’로 간판을 교체했다. 현지 교민들은 “국제 언론이 스캠 의혹을 보도한 직후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프린스그룹의 금융 계열사 프린스뱅크는 ‘범죄 기업에 돈을 맡길 수 없다’는 불안감 속에 예금주들이 대거 인출하며 ‘뱅크런’ 사태를 겪었다. 캄보디아 중앙은행이 긴급 개입했지만 신뢰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과 영국은 프린스그룹 및 관련 계열사 117곳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양국은 프린스그룹이 최소 10개의 온라인 사기센터를 운영하며 외국인들을 감금·고문해 온라인 범죄를 강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 법무부는 천즈 회장을 자금세탁 및 온라인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했고, 그가 소유한 12만7271개(약 21조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몰수할 방침이다.
프린스그룹 회장 천즈(38)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는 지난해 12월 프린스뱅크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종적을 감췄다. 일각에서는 캄보디아 정부가 미국·영국의 압박을 의식해 천즈를 사실상 보호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천즈가 훈센 전 총리의 고문을 지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 역시 프린스그룹 관련 금융 제재를 검토 중이며, 경찰은 서울청에 전담팀을 꾸려 관련 첩보를 수집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도 프린스그룹의 예치금 약 912억 원을 동결한 상태다.
프린스그룹은 창립 10년 만에 부동산·건설·금융 등으로 급성장했지만, 음지에서는 온라인 사기의 거점으로 지목받고 있다. 급속히 사라지는 간판과 비워진 건물은 ‘한때의 성공’이 범죄 의혹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상징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