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기왕 의원
전국 지하시설물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위치조차 확인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수도·하수도·전력·가스 등 국민 생활의 근간이 되는 인프라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도심 곳곳이 잠재적 재난 지대로 남아 있는 셈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복기왕 의원(더불어민주당·충남 아산을)이 국토정보공사와 공간정보품질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하시설물 총 53만9,703㎞ 중 성과심사(검증)를 마친 구간은 7만4,972㎞(13.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1만5,000㎞(20%)는 탐지조차 불가능한 ‘불탐 구간’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수년간 예산을 투입해 지하시설물 전산화를 추진해 왔지만, 실제 검증 비율은 14%에 머물렀다. 불탐률 역시 2021년 23%에서 2025년 20%로 3%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시설물별로는 상수관(3만273㎞)과 하수관(2만9,939㎞)의 검증률이 각각 20% 안팎에 머물렀고, 전기(14.3%), 가스(8.3%), 통신(1.4%) 시설은 더 낮았다. 특히 상수관은 불탐 비율이 35%에 달해, 전체 시설 중 가장 위험도가 높았다.
문제는 이런 불탐 구간이 도시 기반시설의 구조적 취약점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공사 과정에서 해당 구간의 배관이나 전력선이 손상되면 가스 폭발, 단전, 지반 침하 같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서울 송파 싱크홀, 2018년 백석역 열수송관 폭발 등도 정확한 지하시설물 위치 파악 실패에서 비롯됐다.
복 의원은 “비금속관 매설, 다중 매설 구조, 과도한 매설 심도 등 복합적인 원인을 정부가 외면한 결과”라며 “불탐 구간은 국민의 발밑을 위협하는 보이지 않는 재난 위험지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토교통부는 실질적인 재탐사 예산 확보와 첨단 지중레이더 장비 도입, 비금속관 탐지 기술 개발 등 근본적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지하시설물 전산화 사업이 ‘지도상 완료’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위치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데이터가 부정확해, 사고 예방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이 걷는 도시의 발밑은 여전히 ‘깜깜한 블라인드존’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