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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어떤 강남 스타일/안동환 문화부 차장
  • 박명희
  • 등록 2016-02-19 09:5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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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 오전 찾은 서울 한남동의 문화예술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 2010년 5월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근처에 문을 연 이 카페는 요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예술가들의 최전선으로 여겨진다. 카페 앞과 내부에는 ‘STOP 싸이’라는 팻말이 여기저기 내걸려 있다. 커피 한 잔을 팔아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각종 전시와 음악 공연이 열렸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은 ‘문화 대통령’으로 불리는 건물주 싸이와 4년째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홍대에서 쫓겨난 예술가들과 인디 음악인들이 이곳을 최후의 망명지(亡命地)로 선택할 정도로 그 싸움은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격화되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2010년 일본인 건물주와 계약했다. 특약도 있었다. “임차인이 원하는 경우 해마다 계약을 연장한다.” 그러나 싸이가 2012년 2월 또 다른 중간 매입자로부터 이 건물을 사들인 후 퇴거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지면서 특약은 휴지 조각이 됐다. 싸이 측은 법원이 강제집행 중지 명령을 내린 전후인 2015년 3~4월, 9~10월 4차례에 걸쳐 집행을 시도했다. 싸이 측이 테이크아웃드로잉 운영자를 상대로 제기한 형사 고발만 특수공무집행방해와 재물손괴 혐의 등 7건이나 된다.

그러나 싸움의 본질이 ‘내 재산을 내 맘대로 처리하겠다는데 세입자가 왜 재산권을 침해하느냐’는 월권 차원만은 아닌 듯하다. 이태원뿐 아니라 홍대, 신촌, 서촌, 연남동, 경리단길, 강남 가로수길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핫플레이스마다 번지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 등이 쫓겨나는 현상)의 폭력성과 이에 맞선 소상인들의 저항, 보금자리를 잃고 변두리를 전전하는 예술가들의 절박함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게 본질이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5년 만에 한강진역에서 이태원역까지의 거리 풍경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다. 이국적인 음식점들과 동네 슈퍼, 세탁소 등 이태원 골목길을 지켜 온 터줏대감들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와 커피 전문점, 패션 브랜드들에 터전을 내주고 말았다. 싸이뿐 아니라 적지 않은 연예인과 대기업들이 이태원 건물들을 앞다퉈 사들였다. 월 40만원대였던 임대료는 4~5년 만에 수백만원으로 치솟았다. 이 지역의 3.3㎡당 매매가는 1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살아온 ‘실존적 공간’이 사라지는 대신 자본이 그 공간을 욕망하면서 황폐화시키는 모습이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마치 ‘부루마블 게임’처럼 보인다. 주사위를 굴려 은행으로부터 증서(땅 문서 혹은 대출)를 사들인 후 누가 ‘더 빨리’ ‘더 많은’ 건물을 세워 올리느냐, 자본의 속도와 밀도 경쟁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치킨게임 말이다. 

현실도 부루마블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작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소외되고, 은행과 건물주의 ‘투기적 결합’만 도드라진다. 이 게임의 실체는 건물주들의 재산권만 앞세울 뿐 을(乙) 중의 을인 세입자들의 임차권은 존중받지 못하는 비정한 자본주의다. 싸이와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공생(共生)하며, 골목길을 이루는 식당 하나, 공간 하나가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되는 건 불가능한 꿈일까. 

싸이가 돈 때문에 싸우는 게 아니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케이팝 가수로 ‘특별한 사랑’을 받아 온 만큼 스스로가 그 건물을 이태원을 대표하는 케이팝 공간과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만들면 어떨까. ‘오빤 강남 스타일’로, 쿨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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