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칼럼〕의성군, 지방소멸을 막을 ‘오작교 전략’을 시작할 때
  • 조광식 논설위원
  • 등록 2025-07-26 06:19:15
  • 수정 2025-07-26 06:20:18

기사수정
  • - – 결혼, 만남, 그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파격 실험 –

지방소멸이라는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다. 과거에는 정부 보고서나 학술 논문에서나 접하던 용어였지만 지금은 지역 주민들의 일상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쓰인다. 특히 경북 의성군처럼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동시에 진행되는 농촌 지역에서는 이 단어가 단순한 통계를 넘어 실생활의 위기로 다가온다.


실제로 의성군의 인구는 1965년 약 21만 명에서 현재 5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마저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의 45% 이상을 차지한다. 학생 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학교들은 폐교 위기에 놓였다. 1980~90년대만 해도 학생과 주민들로 북적이던 도리원시외버스터미널은 20241, 마지막 버스를 끝으로 운영을 종료했다. 텅 빈 논밭, 조용해진 마을. 지금 우리가 말하는 지방소멸은 바로 이런 풍경을 가리킨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간 청년 귀농, 창업 지원, 정주 여건 개선 등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았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살 집은 지었지만 함께 살아갈 사람은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들은 왜 만나지 않고, 왜 가정을 꾸리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지방소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출산율 저하는 혼인율 저하에서 비롯되며, 이는 다시 만남의 부재로 이어진다. 농촌에는 젊은 층 자체가 희소할 뿐 아니라, 이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도 거의 없다. 귀농을 결심하더라도 결혼 상대를 찾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지역에 정착하기 전에 삶의 동반자를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히 주거와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농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계를 설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새로운 구상이 바로 오작교 전략이다. 이는 단순한 결혼정보 프로그램이 아니라, 의성군의 생존을 위한 구조적 실험이다.


오작교 전략의 핵심은 관계 기반의 인구 회복이다. 지역 내 미혼 청년과 해외 청년 간의 만남을 행정이 적극적으로 매개하고, 이를 통해 결혼출산정착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중앙아시아·남미 등 농촌 친화 국가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문화 교류와 맞춤형 만남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한 명의 청년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세 명이 되는, 직관적이면서도 실효성 있는 인구 회복 모델이다.


물론 이 전략은 결혼을 강요하거나 외국인을 단순히 도구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핵심은 관계를 통한 공동체 형성상호 존중에 기반한 안정적 정착에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거, 교육, 보육, 문화 등 실질적인 정주 인프라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언어·문화 교육, 공동육아 커뮤니티, 신혼부부용 공동주택 등이 그 예다. 오작교 전략은 단지 만남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살아가는 기반을 함께 설계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유사한 사례가 존재한다. 일본 야마구치현과 시마네현 등 농촌 지역에서는 국제결혼 매칭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베트남·우즈베키스탄·필리핀 출신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정착하고 가정을 꾸린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한 이들 지역이 택한 현실적 대안은, 한국 농촌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한국 역시 이민청,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가 긴밀히 협력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전략이다.


무엇보다 의성군은 대구경북신공항이라는 국제적 인프라와 연계되어 있어 글로벌 접근성 면에서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를 적극 활용해 ()의성인 프로젝트라는 이름 아래 국제 가족 공동체를 유치하고, 농촌을 가정이 만들어지는 땅으로 전환할 수 있다. 나아가 칠석 페스티벌, 다문화 소셜링 데이, 가족 정착 체험캠프 등 문화 프로그램을 연계해 관계혼인출산정착이라는 흐름을 정책 루프로 설계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지방 재생이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우려도 목소리도 있다. 다문화 수용에 대한 지역 사회의 불안, 지역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를 감내할 용기. 사람이 없는 땅에 도로와 건물을 세운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제는 행정이 사람이 만나는 구조를 책임지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지방소멸의 본질은 인프라 부족이 아니라 관계의 소멸에 있다. 그리고 그 관계를 복원하는 일은, 더 이상 민간의 몫이 아닌 공공 정책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 오작교 전략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머무는 도시를 넘어, 사람이 태어나는 도시. 의성군이 그 첫 번째 성공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

/ 논설위원

행정학 박사 조광식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가장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가을 밤 밤은 가을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열매다. 가시 돋친 송이 속에 숨어 있다가 단단한 껍질을 벗기면, 고소하고도 은근한 단맛을 품은 알맹이가 드러난다. 구워 먹거나 삶아 먹을 때의 따뜻한 향은 오래된 풍경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한국의 밤은 특히 알이 크고 질이 좋아 ‘한국밤’이라 불린다. 충청남도 공주와 부여, 전라도 순.
  2. 中 전승절 찾는 우원식…김정은과 마주칠 가능성 관심 우원식 국회의장이 2일 저녁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전 80주년 열병식(전승절)’ 행사 참석을 위해 출국했다. 국가 의전 서열 2위인 우 의장은 사실상 정부 대표로 전승절 행사에 자리한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번 행사에 참석하면서, 양측이 텐안먼 광장 망루나 리셉션 등에서 조우할 가능성.
  3. 김정은·김여정, 中 전승절 행사서 서방 명품 착용 포착 중국 전승절 열병식 참석을 위해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고가의 서방 명품을 착용한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NK뉴스는 4일 러시아 크렘린궁이 공개한 사진을 분석한 결과, 김 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옹할 당시 착용한 손목시계가 스위스 명품 ..
  4. 서천지속협, 천연기념물·멸종위기종 포스터 139종 제작·배포 서천군지속가능발전협의회(대표 신상애) 기후생태환경분과위원회는 서천군 관내에서 서식하는 천연기념물·멸종위기종 43종과 산새 96종을 정리한 포스터를 제작해 관내 초·중·고 32개교와 교육청, 유관기관에 배포했다.이번 포스터는 ‘우리가 지켜야 할 멸종위기, 천연기념물 43종’과 ‘늘 우리 곁에 함께하는 산새 96종’ 두 가지로, 기.
  5. 강원도 고상 대진항 강원 고성의 대진항은 바다와 산이 맞닿은 풍경이 매력적인 포구다. 석양이 물든 수평선 너머로 고기잡이 배들이 천천히 돌아오면, 부두는 금세 활기를 띤다. 항구 앞에는 방금 잡아 올린 생선을 싱싱하게 진열한 수산시장이 자리해 여행객의 발길을 붙든다. 단순히 어획물이 오가는 곳을 넘어, 바닷내음과 사람 냄새가 함께 뒤섞인 살아있..
  6. 고양시, 서북부 광역시티투어 '끞' 12월까지 운행 고양특례시는 서북부 광역시티투어 '끞'을 이달부터 12월 7일까지 하반기 운행을 한다고 4일 밝혔다.'끞'은 경기도, 고양·파주·김포시, 경기관광공사가 함께하는 지역 여행 프로그램으로 3개 시의 앞 자음을 조합해 만든 명칭이다. 경기 서북부의 문화·예술·자연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즐길 수 있다.25명 이상 단체 예약 때는 ...
  7. 김정은-시진핑 6년 만에 정상회담…북·중 관계 개선 신호탄 북-중 정상회담이 4일 6년 만에 열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이번 만남은 경색됐던 북-중 관계 개선에 본격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이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저녁 7시께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북-중 양자 회담은 시...
역사왜곡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