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3일 한일·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출국길에 나선다. 3박 6일간 일본과 미국에서 정상과 회담을 마치는 이례적으로 숨가쁜 일정이다.
일본과는 과거사 문제·남북관계·셔틀외교 복원을, 미국과는 관세협상의 세부사항 정리와 더불어 동맹의 현대화 등 안보협의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각 회담은 대한민국 외교의 리더십이 시험장에 오르는 것은 물론 ‘조국 사면’ 이후 하락하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향후 국정운영 동력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23일 오전 일본에 도착해 재일 동포들과 오찬 감담회를 가진 예정이다. 같은날 오후에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 겸 만찬을 일정이 잡혔다.
이번 회담은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관리하는 동시에 안보·경제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양국의 셔틀외교 복원 의지도 상당히 높은 상황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일본을 ‘마당을 같이 쓰는 우리의 이웃이자 경제 발전에 있어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라고 표현하며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도 밝히는 등 한일관계에는 예전에 없던 ‘훈풍’이 불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요미우리 신문 인터뷰에서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뛰어넘는 새 공동선언을 발표하길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한 정부 관계자는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담기느냐의 문제일 뿐 약한 수준의 이재명-이시바 성명이 나올 가능성은 꽤 높다”고 전했다.
일본에서의 일정을 마친 이 대통령은 미 동부 시각 24일 오후 워싱턴DC에 도착해 방미일정을 시작한다.
미국에 도착한 날 재미동포 만찬 간담회를 갖고 미국 학계 정재계 인사들과의 교류행사도 예정돼있다. 워싱턴DC의 유력 외교 안보싱크탱크인 전략국제연구소(CSIS) 초청으로 정책연설에도 나설 예정이다.
당초 기대를 모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의 골프회동은 26일 펜셀베니아주 필라델피아로 이동해 현지 한화 필러 조선소를 둘러보는 일정으로 인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순방의 메인 이벤트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25일 진행되는 한미정상회담의 중요성을 보여주듯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대통령을 수행하지 않고, 일본을 건너 뛰어 이미 미국으로 향한 상황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조 장관이 급하게 방미길에 오른 이유에 대해 “한미정상회담 관련”이라면서 “긴밀한 사전준비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현지에서 최종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21일(현지시간) 오후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만났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무역 관련 대화 의제를 조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미국과의 무역 협상에서 25%로 예고됐던 상호관세를 15%로 낮췄고,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날 무역합의 내용을 문서화한 공동성명을 마침내 발표하면서 한국의 관세협상 세부사항도 정상회담 과정에서 큰 틀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EU의 공동성명은 지난달 27일 정상간 합의 타결 후 25일 만에 발표됐다.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국은 EU산 의약품, 반도체 목재에 부과되는 최혜국대우(MFN) 관세와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 따른 관세를 합산한 (최종) 관세율이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보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미정상회담의 안보 분야 주요 의제는 동맹 현대화와 국방비·방위비분담금 증액, 북한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동맹 현대화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과 거기에서 이어지는 전시작전권 전환의 논의 여부다. 그 과정에서 국방비·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일부 수용하라는 주문이 나올 수도 있다.
또 미국 원전 건설 협력 등을 매개로 경제와 안보 동맹 체제를 공고화하는 거대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공동성명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미정상회담의 가장 큰 변수는 상대방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라는 점”이라면서 “정상회담의 성과가 국익은 물론 내부 국정운영 동력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치밀한 준비는 필수일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