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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적도 별로 없고, 각자 다르고, 서로 낯설어. 그래서 친해.”
  • 장은숙
  • 등록 2025-08-27 13: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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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우리를 옭아매는 이야기에서 벗어나 오직 내 이야기를 쓰기 위한 빛의 여정!


▲ 사진=민음사


이름하여 준구난방 클럽 

태지혜, 송기주, 반지영. 한 독립서점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만난 세 사람은 사는 곳도, 나이도, 직업 도 다르지만 40대 중반의 여성이라는 점,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점, 무엇보다 비슷비슷한 내향인 이라는 공통점에 의기투합해 단톡방을 만든다. 이름하여 준구난방. 신간 소식과 북토크 정보를 공 유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최근에 본 책이나 영화평, 일상적인 수다와 농담이 오가는 공동의 다이 어리나 마찬가지다. 나날의 소식과 읽기의 기록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지던 어느 여름, 만난 적도 별 로 없고 각자 다르고 서로 낯설지만 그래서 친한 이들이 즉흥 여행을 떠난다. 여름철 대삼각형을 만나기 위해,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 


불안을 편안함으로 잠재우는 힘

이주혜 장편소설 『여름철 대삼각형』이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주혜는 여 성의 삶을 테마로 연대와 관계, 고통과 이해의 문제를 깊고 섬세하게 그리며 평단과 독자 양쪽의 신 뢰와 기대 속에서 급성장한 작가다. 2020년 출간된 첫 소설 『자두』는 그해 가장 돋보이는 데뷔작이 었다. 말기 암 환자인 시아버지를 돌보는 며느리와 간병인을 중심으로 죽음과 돌봄 앞에 선 인간들 의 간극을 통찰하는 가운데, 함께 배치된 에이드리언 리치와 엘리자베스 비숍 같은 실존 시인들의 상실과 연대의 경험은 소설을 한층 다면적이고 우아한 서사로 도약시켰다. 잔잔한 바람이 공기를 가르지 않고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처럼 이주혜의 소설은 유독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마음 깊은 곳 에서부터 지진과 해일을 일으켜 불가역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여름철 대삼각형』은 인간 내면의 불 안을 기민하게 포착하고 종국엔 회복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이주혜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를 잃지 않음으로써 완만한 슬픔의 미학을 선취(先取)한다. 


멀리서 보면 전부 다른 사연들

세 사람의 사연에는 저마다의 그늘이 있다. 태지혜는 두 번째 유산의 고통이 몸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이전의 삶과 작별하고 새로운 하루하루를 꾸리던 중, 미성 년자인 시조카가 찾아와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더욱이 1년만 같이 살며 자기를 지켜봐 달라라는 부탁은 한층 더 당황스럽다. 아이도 남편도 없을뿐더러 그 없음이 아직 상처로 남은 태지혜에게 임 신한 시조카와의 동거라니. 한편 남편과 딸이 있는 송기주는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대학생이 된 딸 과의 관계가 늘 복병처럼 느껴진다. 어린 시절 부모의 부재 속에서 갖게 된 결핍과 불안을 딸에게 투영하는 데에서 오는 묵은 갈등이 반복되는 것인데, 딸에게 자신의 내면을 들킬 때마다 송기주의 마음은 정처 없이 방황한다. 반지영은 아버지와 같이 사는 비혼주의자다. 한때 영어 교사였고 지 금은 학원강사로 일하며 아버지의 임대아파트에서 사실상 얹혀사는 중이다. 부모와의 관계나 사회 와의 불화들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이젠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살고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아파트 쓰레기장 설치 문제나 간병 문제, 울컥 역류하는 과거의 장면들과 함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자꾸 고개를 쳐든다.


가까이에서 보면 조금씩 닮은 고민

각자 다른 인생을 살며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는 세 사람이지만 공통점도 있다. 관계 맺기의 불 안함과 삶의 불완전성 앞에서 캄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외롭게 낙담하고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세 사람의 고통은 차라리 비슷해 보인다. 사랑에 빠졌을 때 그토록 단단해 보였던 약속의 말들이 마른 나뭇잎보다 더 쉽게 부서질 수 있다는 걸 알아 버린 태지혜, 딸이 자기가 원하던 모습 의 아이가 아닌 것처럼 자신도 자신이 원하던 모습의 엄마가 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억눌려 사는 송기주, 죄책감에 엄마를 간병했고 지금은 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버지의 아파트에 들어와 살 며 가족이라는 상처로부터 분가하지 못한 반지영. 그들은 가족, 결혼, 부모, 사랑, 우정, 회복, 독립 등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의 세부 항목 속에서 그들을 옭아매는 이야기의 쇠창살에 고립되 어 있다. 밤하늘의 별이 무성하다 한들 고정된 별자리 이야기에 갇혀 있으니 별빛에서 방향을 읽을 수 없다.


그들은 왜 책방에서 만났을까?

세 사람의 만남이 서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은밀하고 신비로운 사건이다. 서점은 우연한 만남과 운명적인 만남이 일어나는 환상적인 공간이다. 그러면서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지극히 현실 적이고 생활감 넘치는 공간이기도 하다. 서점에서 우리는 예기치 않은 책을 만나고 책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인다. 말하는 입보다는 듣는 귀와 넘기는 손이 더 바쁜 곳. 우리는 책 속에서 만나는 타인 의 삶을 읽고 듣고 바라봄으로써 비로소 내 삶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서점에선 언제나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가 열린다. 한껏 엘피(LP)스러운 공간인 서점은 지식과 정보로서의 책이 아니라 손으 로 만질 수 있는 실물의 감각이 살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책을 만지면서 위로받고 회복 되듯 인생의 반환점에 접어든 이들은 서로의 삶을 듣고 만지며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의 기운을 감 각한다.


그들이 다시 그리는 대삼각형

우리는 자기 앞의 생을 그저 주어진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때 희망을 얻는다. 나의 고통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편안함이 펼쳐진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그 아래 편안함 이라는 선율이 깔리면 삶은 더 풍요로운 악보가 된다. 여름날의 즉흥 여행에서 그들이 바라본 밤 하늘의 별이 감동적인 건, 이렇게나 다른 그들이 지금 같은 곳을 바라보며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 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들은 불안과 상처로 말미암아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여름철 대삼각형』은 떠남과 만남에 관한 소설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는 떠남과 만남이 반복되는 여정에서 만들어지는 기적이다. 자신을 떠나 또 다른 자신과 조우하게 된 세 사람이 처음으로 만난 장소가 책방이라는 사실은 새삼 의미심장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을 하나의 책으로 만들었을 때 진 정으로 구원받는다. 그러고 보면 세상도 하나의 책방인지 모르겠다.  


작가 소개

이주혜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누의 자리』, 장편소설 『자두』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산문집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를 비 롯해 다수의 역서가 있다. 2023년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 로 신동엽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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