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동신문캡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31일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확정한 가운데, 김 위원장이 트럼프 집권 2기 들어 처음으로 북미 대화 재개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해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포기한다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 있다는 조건부 메시지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한 것은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다.
백악관도 곧바로 입장을 냈다. 22일(현지 시간) 백악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동안 김정은 위원장과 세 차례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반도를 안정화시켰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해 김 위원장과 대화하는 데 계속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최근 “올해 중 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 북미 간 물밑 조율 가능성에 관심이 모인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북중 정상 외교 직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시 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시 주석과 만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추진해보자”고 제안했으며, 19일 진행된 BBC 인터뷰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폐기하는 대신 생산을 동결하는 합의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이를 “임시적 비상조치이자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같은 연설에서 한국을 정면 비판하며 대화 의지를 일축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제시한 ‘핵 개발 중단-축소-폐기’ 3단계 비핵화 로드맵에 대해 “단언하건대 우리에게 ‘비핵화’라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이어 “우리는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이 없으며 그 무엇도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관계 단절을 선언했다.
이에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도, 우리와 대화할 의지도 없다”며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는 여전히 평화를 구걸하며 공허한 ‘비핵화 3단계 해법’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미 간 대화 재개 가능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김 위원장의 조건부 메시지와 백악관의 원칙적 대응, 한국 정부의 ‘핵 동결’ 카드가 향후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어떤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