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같은 내용의 비방글을 썼더라도 글을 게시한 온라인 공간의 '구성원'에 따라 유·무죄가 달라진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강태훈)는 모욕혐의로 기소된 공인중개사 강모씨(59)에게 무죄를 깨고 벌금 3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고 18일 밝혔다.
강씨는 지난 2015년 5월 자신이 운영하는 부동산업소에서 한 달가량 근무하다가 퇴직한 정모씨를 겨냥한 비방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카카오스토리'와 '공인중개사 모임 인터넷카페'에 올린 혐의로 약식기소됐다.
강씨는 정씨를 '정 실장'으로 부르면서 '철없다 여긴건 진작 알았는데 그게 꼴값을 떠는 거였더라' '받는 데만 익숙한 지독한 공주꽈' 등 그를 비난하는 글을 카카오스토리 계정과 인터넷카페에 동시에 썼다.
현행 형법 제311조는 모욕죄가 성립하는 구성요건 중 하나로 '비방의 대상이 특정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가 모욕의 대상이 되는 상대방을 인식할 수 있어야 모욕죄가 성립한다는 의미다.
1심은 증인으로 출석한 서모씨가 "강씨가 올린 글을 보고 '정실장'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고 진술하는 등 정 실장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정씨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강씨가 인터넷카페에 올린 글에 대해서는 무죄로 봤지만 카카오스토리에 올린 글은 유죄로 판단했다.
SNS인 카카오톡의 연동서비스 카카오스토리는 전화번호를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만 계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을 볼 때 강씨가 비록 정씨를 '정실장'이라고 썼더라도 충분히 정씨가 특정된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정씨는 강씨가 운영하는 부동산에서 약 한달 정도 근무했고 그 기간에는 강씨와 정씨 단 2명만 근무했다"며 "특히 카카오스토리 게시판은 상대방의 전화번호를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하거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아는 경우에만 접근할 수 있다. 부동산 고객 중 상당수는 강씨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강씨가 정씨를 지목해 비방한 것을 넉넉히 알 수 있었다"고 판시했다.
다만 재판부는 "강씨의 카카오스토리 방문자 수는 그리 많지 않았고 정씨가 문제를 제기한 직후 게시물을 삭제했다"며 "강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도 없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