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회의 만찬장이 열릴 경주박물관 모습.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뉴스21 통신=추현욱 ]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불과 40여일 앞두고 만찬장으로 쓰일 장소가 갑작스레 변경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정부가 직접 80억원을 들여 만찬장을 만들고서는 “초청 인사가 더 늘었다”는 이유로 만찬장을 변경한 것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APEC준비위원회(준비위)는 지난 1월 국립경주박물관 중정을 만찬장으로 확정했다. 우리나라와 신라 문화를 잘 보여주는 최적의 장소라는 평가에서다. 당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직접 후보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준비위는 정부와 지자체, 민간이 참여한다.
준비위는 이곳에 2000㎡ 규모의 신축 한옥 목조건물을 지어 각국 정상 등 최대 500여명을 수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부지 양쪽에 있던 다보탑·석가탑 복제품 유구를 옮기지 못한 채 설계가 진행되면서 전체 공간이 좁아졌다. 내부에 무대 설치 등이 반영되자 수용 가능 인원은 25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준비위는 40~50번 현장을 방문해 해당 문제를 살폈다. 실무진 방문까지 포함하면 100번이 넘는다는 것이 경북도의 설명이다. 정부도 만찬장 수용 가능 인원수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행사를 준비해 왔다는 뜻이다.
지난 17일 정부합동안전점검에서 화장실·조리실 시설이 없다는 지적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정부는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된 박물관 터에 정화조를 설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 만찬장과 40m 떨어진 박물관 내 화장실을 리모델링해 ‘VIP 전용 화장실’로 사용하기로 했다.
애초 만찬장 내부에 화장실을 만들 계획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조리실도 만찬 음식 종류가 정해지는 대로 조리에 필요한 화기 등을 30m 떨어진 커피숍에 설치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준비위는 지난 19일 “새 정부 첫 대규모 국제 행사인 APEC 공식 만찬에 더 많은 인사가 초청될 수 있도록 만찬장을 인근 호텔로 변경한다”고 밝혔다. 80억원을 들인 건물이 역할을 잃은 셈이다.
이에 애초 행사 준비 자체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전 정부가 선정한 만찬장을 새 정부가 일부러 사용하지 않으려 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APEC 준비를 총괄해온 국무총리와 문체부 장관 등은 현재 모두 교체됐다.
지역 한 관계자는 “APEC 만찬의 경우 100~1000명까지 나라별로 특색 있게 준비해 왔다. 호텔에서는 경주만의 특색을 경험하기 힘들 것”이라며 “더 많은 인사를 초청하기 위해 행사 한 달여를 앞두고 다 지어놓은 만찬장을 변경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참석이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경호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찰리커크가 유타밸리 대학교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하면서 만찬장 내부에 화장실이 없다는 점을 두고 미국 측이 문제를 제기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백악관은 이번주 내로 APEC과 관련해 경주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오는 경주의 특성을 무시하고 만찬장을 오로지 문화재와 연계하는 데만 급급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초 만찬장 후보지로는 첨성대, 동궁과월지 일대 등 경주를 대표하는 문화재 인근이 논의됐다.
하지만 이 후보지들은 문화재 발굴 등으로 공사 중단 우려가 있어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인 박물관 중정으로 정해졌다. 박물관 중정은 건립 당시 레이저 투시 등을 통해 문화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된 곳이다.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APEC에 참석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언론보도가 이어지면서, 정부가 이를 사전에 파악하고 참석인원을 대폭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