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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떡국, 전·과일 한 접시면 끝···종가 차례상 근본은 간소함이었다
  • 추현욱
  • 등록 2026-02-14 23: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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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례상, 기제사와 섞이고 시간흐르며 변질
  • 63.9%가 '올해 설 차례 안 지낸다'

차례상도 사진도, 고인을 추억하는 그들만의 방식 (사진=네이버db 갈무리)

농촌진흥청이 지난달 실시한 ‘설 명절 농식품 구매 행태 조사’에 따르면 ‘올해 설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가정은 63.9%에 달했다. 전년보다 12.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차례를 지내겠다’고 답한 가정 역시 음식 가짓수와 양을 줄이거나 반조리·완제품을 활용하는 등 준비 과정을 간소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노동의 시간으로 정성을 재단해온 명절의 관습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차례상의 풍경이 전통의 본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이 발표한 ‘제례 문화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따르면 차례는 설과 추석 등 명절이 돌아왔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의식으로, 그 명칭 역시 차(茶)를 올리던 간소한 습속에서 비롯됐다.

혼돈은 이 의식이 고인의 기일에 음식을 차려 추모하는 기제사와 뒤섞이면서부터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전통 격식을 지키는 종가에서는 술과 떡국, 전 한 접시, 과일 한 쟁반 등 주자가례의 원칙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차례상을 차려왔다”며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유통 구조가 발달하면서 일반 가정을 중심으로 간결했던 차례 음식 수가 점차 늘어나게 됐다”고 설명한다.


미니멀·외주화된 차례상

문제는 이 변화가 단순히 상차림의 확대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차례 음식이 늘어날수록 준비 과정은 복잡해졌고,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여성에게 쏠렸다. 그 결과 명절은 함께 모이는 날이 아니라 노동과 긴장이 집중되는 시간이 되곤 했다. 피로감은 누적됐고, 불화로 이어졌다.

삼형제의 장남 정주석씨(50·가명)는 1년 전, 이 같은 굴레를 끊어내고자 차례상을 대폭 줄이자고 제안했다. 정씨는 “아내와 제수씨들, 그리고 어머니까지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데 명절만 되면 온종일 주방에 서 있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다”며 “부모님의 반대가 있어 차례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해마다 상차림을 조금씩 줄일 예정이다”라고 했다. 또한 그는 “머지않아 명절에 차례 대신 가족끼리 여행을 떠나는 모습도 상상해본다”며 웃었다.

MZ세대는 차례상을 보다 실용적인 기준으로 바라본다. 주부 이현실씨(32)는 올해 설을 앞두고 온라인 배달 업체를 통해 ‘차례상 세트’를 주문했다. 전통시장이나 마트에서 직접 장을 보는 것과 비교해 가격 차이가 크지 않고, 준비에 드는 시간 역시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차례상을 둘러싼 선택지가 다양해진 지금, 명절 풍경은 더 하나의 정답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달라진 삶의 조건 속에서 각 가정이 선택한 방식들이 겹겹이 쌓이며 차례는 ‘현재진행형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서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과도하게 무거워진 명절 상차림이 현실과 괴리를 빚고 있다며 ‘차례상 간소화’를 공식 선언했다. 20가지가 넘는 음식을 차려야 한다는 관행에서 벗어나, 송편·나물·구이·김치·과일 등을 중심으로 한 9가지 구성의 ‘차례상 표준안 진설도’를 제시했다. 형식보다 조상을 기리는 의미에 방점을 찍자는 취지였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으로 가족 구성의 변화와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 1인·소가구 확대, 고물가로 인한 생활 부담 등 사회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꼽는다.


여기에 ‘전통은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 차례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한층 유연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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