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뉴스21통신】 홍판곤기자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속됐다.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고, 검찰은 수사를 진행했으며, 절차는 적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민이 목격한 것은 법의 공정한 집행이 아니라 권력의 속도전이었다. 여당은 압도적 의석수로 정부조직법을 단독 처리했고, 야당은 항의 속에 전원 퇴장했다. 이튿날 국무회의는 방송통신위원회 폐지를 신속히 의결했다. 그리고 불과 72시간여 만에, 이 전 위원장은 남편과 산책 중 현장에서 수갑이 채워져 연행됐다.
이것이 과연 법치국가의 모습인가. 우연일까, 아니면 치밀하게 계산된 권력의 시나리오인가.
여당은 합법적 절차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국회에서 표결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으니 문제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단순히 다수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토론과 합의, 소수 의견의 존중, 권력 견제가 함께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라 부를 수 있다. 야당이 전원 퇴장한 국회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일방통행의 현장이었다.
역사를 돌아보라. 합법적 절차를 통해 독재가 시작된 사례는 무수히 많다. 1933년 나치당과 히틀러가 장악한 의회의 독일 수권법(정식명칭:국민과 국가의 고난을 제거하기 위한 헌법)도 의회를 통과했고, 유신헌법도 국민투표를 거쳤다. 민주주의의 적은 언제나 절차의 외피를 쓴다. 절차적 합법성이 곧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하는가.
이 전 위원장은 고위 공직자 출신이다. 도주할 이유도,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도 없었다. 그럼에도 남편과 산책 중 현장에서 수갑이 채워져 연행됐다. 이는 법적 필요성보다 정치적 메시지에 가까웠다. 권력은 이 장면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는가. “우리에게 반대하면 이렇게 된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도주 우려가 전혀 없는 전직 위원장을 길거리에서 수갑 채워 연행한 것은 법의 집행이 아니라 공포의 연출이었다.
여당 고위 인사들의 의혹은 수개월째 조사 중이거나 무혐의로 종결된다. 반면 야권 인사와 비판 세력에 대해서는 신속한 구속 영장이 발부된다. 같은 의혹이라도 누가 저질렀느냐에 따라 법의 잣대가 달라진다. 국민은 이제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 원칙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음을 체감한다.
사법부와 검찰이 정치적 중립성을 잃는 순간,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는 무너진다. 법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면, 국민은 더 이상 법을 신뢰하지 않는다. 법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 사회는 어떻게 되는가. 역사가 답을 알고 있다.
과연 영장을 청구한 사건담당 영등포경찰서와 검찰, 영장을 허가한 판사는 양심적인 판단에 의한 결정이었을까?
제2의 지귀연 판사가 되어 개딸들의 표적이 되는 것이 두려워을까? 대법원장도 겁박하고 검찰청도 폐쇄시키는 여당 권력앞에 정의로운 판단능력이 한 없이 작아 졌지는 않았을까?
정권은 ‘대한민국 리세팅’을 내세운다. 그러나 개혁과 숙청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개혁은 제도를 고치는 것이고, 숙청은 사람을 제거하는 것이다. 불편한 언론인이 표적이 되고, 비판적 지식인이 수사를 받으며, 독립성을 지킨 공직자가 구속된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통제다.
중국 문화혁명 시기, 비판적 인사들은 고깔모자를 쓰고 대중 앞에서 굴욕을 당했다. 형태는 달라도 본질은 같다. 공포는 일부를 겨냥하다가 결국 모두를 삼킨다. 오늘은 이진숙이지만, 내일은 당신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감시와 참여, 그리고 용기 있는 발언이 있어야 한다. 다수결로 통과된 법안, 하루 만에 결정된 폐지, 그리고 72시간여 만에 벌어진 전직 위원장의 체포 — 이것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빠르게 후퇴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침묵 속에 안전을 구할 것인가, 아니면 목소리를 내어 민주주의를 지킬 것인가. 역사는 침묵하는 사회에서 안전한 사람은 없다고 가르친다. 권력의 칼날은 특정 집단만을 겨누지 않는다. 오늘 그들을 침묵시키면, 내일은 우리 차례다.
민주주의는 누군가가 대신 지켜주는 제도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선택하고 지켜내야 할 삶의 방식이다.
이진숙 전 위원장의 구속은 단순한 법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된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힘은 깨어 있는 시민의 용기다.